학교에서 친구의 인사를 피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아이의 실제 장면을 기록한 육아일지다.
그날 보호자가 했던 말과 아이의 반응, 그리고 인지행동치료(CBT) 관점으로 뒤늦게 이해하게 된 흐름을 정리했다.
친했던 친구가 반갑게 "안녕!" 하고 달려오는데, 우리 아이는 못 본 척 고개를 홱 돌려버립니다.
눈을 질끈 감아버리거나, 멍하니 정면만 응시하며 친구를 투명 인간 취급하기도 합니다.
심지어는 아무 말 없이 멀리 뛰어가 도망쳐 버리기도 하죠.
이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당황합니다.
"친구한테 그러면 안 되지, 공평하게 인사해야지!"라고 훈육하지만,
아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자기만의 상상 놀이 속으로 숨어버립니다.
부모는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성격이 이상한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됩니다.
😟 그때, 내가 한 말들
당황했고 솔직히 ‘훈육해야 하는 상황’이라고 생각했다.
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.
“왜 인사 안 해?”
“인사는 해야지.”
“왜 무시해?”
지금 돌아보면 아이의 상태를 묻는 말이 아니라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말들이었다.
아이에게서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눈동자는 여전히 한 곳에 고정돼 있었다.
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.
🗣 아이가 남긴 말
조금 시간이 지난 뒤 아이는 아주 짧게 말했다.
“무서웠어.”
그 말 외에는 아무 설명도 없었다.
👁️ 나중에야 연결된 이야기
시간이 조금 흐른 뒤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.
“사람을 보는 게 무서워.”
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는 상황 자체가 무섭다는 말이었다.
그제야 그날 아이의 눈동자가 왜 사람을 피하고 한 지점에 고정돼 있었는지가 연결됐다.
🧠 뒤늦게 다시 보게 된 설명 (CBT 관점)
그날 이후 아이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다시 정리했다.

🔍 아이의 행동을 다시 보면
눈을 감거나 정면만 응시함 → 감각 차단에 가까운 반응
아무 말 없이 도망감 → 도피 반응에 가깝다
CBT에서는 이런 행동을 불안을 줄이기 위한 안전 행동으로 설명한다.
그 순간 아이의 뇌는 예절이나 규칙을 처리하는 상태가 아니라
“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안전하다”라는 신호만 받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.
그래서 안 들은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없는 상태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.
✍️ 그래서 다시 적어본 말의 선택지
그날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다음은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을 다시 적어 두었다.
- ❌ 왜 인사 안 해? → ⭕ 지금 많이 무섭구나
- ❌ 말 좀 해. → ⭕ 지금은 말 안 해도 돼
- ❌ 도망가면 안 돼. → ⭕ 무서우면 엄마 옆에 서 있어도 돼
🗣 아이 앞에서 해도 안전한 문장들
아이를 평가하지 않고 아이가 듣고 있어도 괜찮은 말들이다.
① 타인에게 말할 때 (어른용)
(변명 없이, 상황만 전달)
- “지금 생각에 좀 잠겨 있어서 반응이 늦어요.”
(He’s a bit lost in thought, so his response is delayed.) - “새로운 상황을 보는 중이라 시간이 조금 필요해요.”
(He’s taking a moment to take in a new situation.) - “지금은 관찰하는 단계라 바로 반응이 안 나와요.”
(He’s in observation mode right now, so he’s not responding yet.) - “에너지가 먼저 올라와서 잠깐 정리하는 중이에요.”
(His energy spiked first, so he’s taking a moment to settle.) - “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괜찮아질 거예요.”
(If you give him a little time, he’ll be okay.)
👉 설명은 짧게,
👉 이유는 하나만,
👉 웃으면서 말해도 무리 없는 문장들이다.
② 인사했는데 반응을 못 받은 아이 친구에게 하는 말
(가장 먼저)
- “와 줘서 고마워.”
(Thank you for coming over.) - “먼저 인사해 줘서 고마워.”
(Thanks for saying hi first.)
(바로 이어서)
- “지금은 놀라서 반응이 잠깐 멈췄어.”
(He got startled and froze for a moment.) - “싫어서 그런 건 아니야.”
(It’s not because he didn’t want to.) - “사람이 갑자기 다가오면 잠깐 멈출 때가 있어.”
(Sometimes people freeze when someone comes up suddenly.)
(관계가 끊어지지 않게)
- “조금 있으면 다시 괜찮아질 거야.”
(He’ll be okay in a little bit.) - “나중에 다시 인사해도 돼.”
(You can say hi again later.) - “마음은 있었어.”
(He wanted to say hi.)
③ 내 아이에게 바로 말해줄 때
(그 순간 / 짧게)
- “괜찮아.”
- “지금 많이 무섭구나.”
- “말 안 해도 돼.”
- “여기 엄마 있어.”
- “엄마 손 잡을래?”
👉 설명하지 않는다.
👉 시키지 않는다.
👉 선택지만 준다.
③ 상황이 지난 뒤, 아이에게
(정리용 말)
- “아까 그때 많이 무서웠지.”
- “그래도 잘 버텼어.”
- “다음엔 엄마 손 잡아도 돼.”
- “엄마는 항상 옆에 있어.”
👉 잘했는지 평가하지 않는다.
👉 이유를 캐묻지 않는다.
👉 안전이 먼저였다는 점만 남긴다.
🧩 이 일을 겪고 남긴 기준 하나
인사를 잘하는 아이가 목표는 아니다.
사람이 덜 무서워지는 경험을 하나씩 쌓는 것이 목표다.
그 기준으로 보면 그날 아이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에 가깝다.
🌱 마무리
그날 학교 안에서 아이의 눈동자는 한 곳만 응시하고 있었고 나는 그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.
이 글은 늦게 이해하게 된 마음을 정리해 두는 육아일지다.
다음에는 조금 덜 급하게 말해보려 한다.
이 아이는 느린 게 아니라, 다른 속도로 안전을 확인하는 중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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